어느 도시의 불빛도 내 방의 고요를 다 밝히지 못하는 밤이 있다. 시계 초침 소리, 냉장고의 낮은 진동, 간간이 지나가는 차의 타이어가 젖은 도로를 밀고 가는 소리만이 공간을 드나든다. 메시지 알림은 없고, 반쯤 읽다 덮은 책은 더 이상 손을 부르지 않는다. 이런 밤에는 하루의 껍질이 벗겨진다. 낮에는 필요 없었던 질문들이 고개를 든다. 내가 잘하고 있는가, 이 길이 맞는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바라보는가. 외로운밤은 대부분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느리게 다가와 의자를 끌어 당겨 옆에 앉는다.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이제야 나를 보자고.
나는 직업상 사람들의 하루 끝을 많이 들어왔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간호사의 하품이 가진 무게, 시험을 앞둔 대학생의 침대 머리맡에 쌓인 형광펜, 이혼 조정서를 출력한 뒤 컴퓨터 전원을 끄지 못하는 가장의 등, 모두 외로운밤을 통과한다. 그들 이야기를 들으며 배운 건 단순하다. 이 밤을 이기려 하지 말 것, 대신 이 밤과 동맹을 맺을 것. 그리고 다음 날로 옮길 수 있는 작고 단단한 다짐 하나를 만들 것. 이 글은 그런 동맹을 맺는 방법에 관한 기록이다.
고립과 고요의 차이, 그리고 신체의 시계
외로운밤을 설명할 때 자주 섞이는 두 개념이 있다. 고립과 고요다. 고립은 단절이고, 고요는 틈이다. 고립에서는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고요에서는 에너지가 모인다. 혼자 있는 시간이 모두 고립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맥락이다. 외로운밤이 고립으로 틀어지는 순간은 보통 선택권을 잃었다고 느낄 때다. 대화하고 싶어도 대상이 없거나, 불안을 누그러뜨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거나, 한 번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에 자정이 넘어가 버릴 때다.

여기에 생체 리듬이 개입한다. 오후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 멜라토닌 분비가 최고치를 향하는 동안, 전전두엽의 억제 기능은 낮보다 약해진다. 처리하지 못한 감정이 재생산되기 쉬운 환경이 되는 셈이다. 낮에는 사소하게 넘긴 일들이 밤에는 확대 복제된다. 보름달 같은 상상은 이런 밤에 부풀어 오른다. 그러니 외로운밤에 생각이 깊어진다기보다, 필터가 얇아지고 반사음이 커진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것을 알면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뇌의 환경 설정 탓이 좀 있다.
나를 스치는 밤들의 얼굴
나는 몇몇 밤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첫 직장에서 팀을 옮기고 난 뒤의 10월, 낯선 도면 파일 앞에서 커서를 굴리다 결국 손을 떼고 창문을 열었다. 바람은 차가웠고, 사무실의 방음은 성능이 좋았다. 그때 떠오른 생각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의 문제였다. 낮에는 타인의 언어에 붙잡혔고, 밤에는 내 언어가 행방을 잃었다. 그 밤에 한 일은 대단하지 않았다. 쉬운 작업 하나를 골라 끝내고, 가계부에 지출 3가지를 정리했다. 잠들기 전 메모장에 내일 팀 동료에게 물을 질문을 한 문장으로 적었다. 그 사실들이 나를 설득했다. 아직 할 줄 아는 것이 있고, 내일 묻고 배울 수 있다고.
또 다른 밤은 병원 대기실에서였다. 수술을 앞둔 가족의 배웅을 마치고 돌아와 자리를 잡았을 때, 늘 하던 명상도, 음악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는 숫자가 나를 구했다. 수술 예상 시간 2시간 30분, 회복실 이동까지 30분, 첫 간병인 교대가 올 때까지 4시간. 그 시간을 블록으로 나눴다. 한 블록마다 할 일을 간단히 정했다. 물 마시기, 보호자 안내문 다시 읽기, 보호자 처방전 접수 시간 확인하기, 문 앞을 다섯 번 왔다 갔다 하기. 별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지금과 다음을 이어주는 얇은 다리가 됐다.
이 두 밤에는 공통점이 있다. 생각의 크기를 통제하는 대신, 행동의 단위를 바꿨다는 점이다. 외로운밤에 최선을 찾다가 지쳐 본 사람들은 안다. 최선 대신 적당한 것들을 적절한 순서로 배치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스크린과 침대 사이, 두 칸의 거리
외로운밤을 더 외롭게 만드는 가장 흔한 연료는 스크린이다. 무작정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삶이 고해상도로 눈앞에 펼쳐진다. 내 방의 낮은 와트수 조명 아래에서 그 화질은 잔인하다. 스크린을 끊어내는 것이 답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현실적으로, 기기 전원을 끄는 선택은 언제나 가능하지 않다. 대신 두 칸의 거리를 둔다.
첫째 칸은 경계다. 침대 위에서는 알림을 끄고, 앉아서 보되 눕지는 않는다. 기대어 보기 시작하면 분간이 흐려진다. 둘째 칸은 목적이다. 무언가를 찾아 들어갈 때, 제목을 미리 정한다. 예를 들어, 스트레칭 영상 10분, 내일 점심 도시락 레시피, 오늘 있었던 국제 뉴스 핵심 정리. 그 제목을 머릿속에 간판처럼 걸고 들어가면 아무 표지판 없는 통로를 헤매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 두 칸만으로도 무의식적인 비교와 무목적 체류가 줄어든다.
감정의 과부하를 덜어내는 언어의 틀
언어는 생각을 운반할 뿐 아니라, 생각의 크기를 재단한다. 외로운밤에 흔한 문장은 이렇다. 나는 왜 늘 이 모양일까. 모두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 절망적이다. 이런 문장을 조금 바꿔본다. 오늘은 내가 한계를 크게 느낀다. 몇몇 상황에서 소외감을 느꼈다. 좌절감이 크다. 전자는 정체성을 공격하고, 후자는 상태를 묘사한다. 전자는 막다른 벽을 만들고, 후자는 출구를 남긴다. 언뜻 사소해 보여도 이 차이는 크다. 새벽 1시에 스스로를 다루는 법은 낮의 자기평가서보다 훨씬 중요하다.
나는 상담실에서 종종 3분 글쓰기를 제안한다. 종이에 펜을 대고 3분 동안 멈추지 않고 지금 드는 생각을 적는다. 문법도, 맞춤법도, 논리도 신경 쓰지 않는다. 3분을 꽉 채우지 못해도 괜찮다. 다만 마지막 30초에는 다음 두 문장을 써본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 통제할 수 없는 것. 분류가 끝나면, 통제 가능한 목록에서 하나만 골라 내일의 행동으로 옮긴다. 이 작은 관성 전환이 새벽의 자기비하를 줄인다.
몸을 몇 센티미터라도 움직이는 일
외로운밤은 몸을 무겁게 만든다. 하지만 머리로 밤을 이기려 하면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럴 때는 움직임이 더 좋은 도구가 된다. 복잡한 운동이 아니다. 목과 어깨를 천천히 굴리는 동작, 허리를 둥글게 말아 일어서는 동작, 서서 발뒤꿈치를 들었다 내리는 동작이면 충분하다. 움직임의 초점은 심박수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몸과 방의 경계를 다시 느끼는 것이다.
나는 밤 11시 이후에 하는 루틴을 시간으로 재지 않는다. 횟수도 재지 않는다. 대신 두 가지 기준을 둔다. 호흡이 조금 길어진 순간, 몸 어느 한 부위의 감각이 명확해진 순간. 이 두 순간을 만나면, 루틴은 목적을 다했다. 굳이 더 하지 않아도 된다. 루틴은 지키느라 파손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늘려서 파손된다.
15분짜리 야간 복구 루틴
외로운밤에 과욕을 부리면 오히려 잠을 놓친다. 짧고 반복 가능한 루틴이 내일로 가는 다짐을 붙잡아준다. 아래는 내가 여러 사람과 실험하며 다듬은 15분 루틴이다. 상황에 맞춰 길이를 줄이거나 순서를 바꿔도 무방하다.
- 불을 두 단계 낮춘다. 가능하면 간접 조명으로 바꾼다. 컵 한 잔 분량의 미지근한 물을 마신다. 손으로 얼굴을 덮고 5회 천천히 숨을 쉰다. 들숨 4초, 멈춤 2초, 날숨 6초. 내일 해야 할 일 중 확실히 하나만 메모한다. 구체적 동사로 시작해 10단어 이내로. 자리에 누워 다리를 베개에 얹고, 눈을 감지 않더라도 3분간 가만히 있는다.
다섯 가지를 모두 해도 15분을 크게 넘지 않는다. 핵심은 단순함이다. 이 다섯 가지는 실행 실패 비용이 낮다. 실패 비용이 낮아야 다음 밤에도 다시 시도하게 된다.
다짐을 쓰는 기술, 과하지 않게 정확하게
내일로 건네는 다짐은 길고 아름다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짧고 측정 가능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모호한 다짐은 이런 식이다. 더 열심히 살자. 관계에 최선을 다하자. 불안을 이겨내자. 대신 다음과 같이 바꾼다. 오전 9시 전에 A 프로젝트 파일명 정리. 점심시간에 동료 한 명에게 이번 주 잘한 점 한 마디 보내기. 퇴근길 편의점 앞에서 5분 서서 하늘 보기. 이 정도가 좋다. 다짐은 계획과 다르다. 계획은 일정 전체를 설계하지만, 다짐은 내일 하루의 핵심 제스처 하나를 고르는 일이다.
나는 다짐을 세울 때 세 가지 프롬프트를 사용한다. 하나, 지금 상태에서 가장 쉬운 다음 행동은 무엇인가. 둘, 그 행동을 했을 때 내가 받는 구체적인 이익은 무엇인가. 셋, 최악의 날에도 실행할 수 있도록 크기를 줄인다면 어디까지 가능한가. 예를 들어, 읽어야 할 보고서가 산더미라면 쉬운 다음 행동은 표지와 목차 스캔이 될 수 있다. 이익은 다음 회의에서 맥락을 놓치지 않는 것. 크기를 줄인다면 5분 타이머를 켜고 첫 번째 장의 마지막 문단까지만. 이렇게 구체화하면 외로운밤의 거대한 막연함이 작아진다.
관계의 두께를 바꾸는 작은 연락
밤이 깊어질수록 연락은 부담스러워진다. 하지만 꼭 통화가 아니어도 된다. 짧은 메시지 하나로 충분할 때가 많다.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동료에게 이렇게 보낸 적이 있다. 오늘 네가 예전에 알려준 단축키 덕에 시간을 절약했어. 고마워. 상대에게 답장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관계를 갱신하는 문장이다. 고맙고, 구체적이고, 끝이 열린 말. 외로운밤에는 이런 문장이 체온을 높여준다.
반대로, 연락하기 어려운 관계도 있다. 연락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음을 안다. 그럴 때는 다짐의 방향을 바꾼다. 관계를 바로잡으려 애쓰지 말고, 관계의 가장자리에서 나를 지키는 일로 전환한다. 예를 들면, 내일 그 사람과 마주칠 가능성이 크다면 자리에 앉기 전에 숨을 길게 두 번 쉬기로 한다. 불필요한 설명을 줄이고 회의 안건에만 대답하기로 한다. 피하고 싶은 사람을 무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나를 떠내려가지 않게 하는 방식이다.
환경의 마찰 줄이기
외로운밤에는 사소한 불편이 크게 느껴진다. 배선이 엉킨 충전기, 비어 있는 치약, 맞지 않는 베개. 낮에는 무시할 수 있었던 것들이 밤에는 존재감을 키운다. 환경의 마찰을 줄이는 데는 초기 세팅이 중요하다. 침대 옆에는 물, 립밤, 얇은 수건, 작은 메모지를 둔다. 휴대폰 충전기는 손 뻗어 닿지 않는 위치에 둔다. 커튼은 틈이 생기지 않도록 클립 하나를 추가한다. 이런 세팅을 해두면 밤중의 자잘한 스트레스를 미리 눌러놓을 수 있다. 인간은 게으른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게으름 친화적 환경을 만들면 훨씬 쉽게 습관이 붙는다.

효율과 자비 사이의 균형
외로운밤에는 종종 퍼포먼스의 잣대를 꺼내 자신을 잰다. 오늘 몇 시간을 허비했는지, 동료 대비 산출이 어떤지, 내 커리어가 몇 센티나 앞으로 나아갔는지. 효율은 중요하다. 그러나 효율만을 흡입하면 속이 쓰리다. 자비가 없으면 다음 날의 동력이 줄어든다. 자비는 봐주기가 아니다. 사실 검토다. 오늘의 환경과 에너지에 비추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어제보다 나아졌는가가 아니라, 오늘 조건에서 나아갈 수 있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예를 들어,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보호자는 밤 10시 이후가 하루의 유일한 자유 시간일 수 있다. 이 시간에 영어 단어 50개를 외우겠다는 다짐은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 대신 10개만 외우고, 나머지 시간은 허리를 펴고 눈을 감고 앉아 있기. 이런 선택이 쌓이면 오히려 장기적으로 효율이 오른다. 몸과 마음이 회복해야 다음 날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숫자로 밤을 측정하는 법
감정은 측정이 어렵다. 잠깐의 기분 변화가 하루 전체를 뒤덮기도 한다. 그래서 가벼운 로그를 권한다. 척도를 크게 만들면 부담이 된다. 더 간단히 가자. 0에서 3까지. 0은 매우 힘듦, 1은 조금 불편함, 2는 대체로 괜찮음, 3은 편안함. 잠들기 전 점수를 메모장에 적는다. 그리고 그 옆에 오늘 밤에 한 행동 중 좋은 영향을 준 것 하나만 기록한다. 예를 들어, 물 마시기, 창밖 보기, 메시지 한 통 보내기, 루틴의 세 번째 단계까지. 일주일만 기록해도 경향이 보인다. 내게 잘 맞는 선택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다.
숫자는 선명하다. 그러나 숫자에 목을 매면 오히려 불안이 커진다. 평균이 내려갔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평균은 분산을 포함한다. 특정 날의 나쁨이 전체를 망치는 것은 아니다. 기록은 나를 판단하려는 용도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려는 용도여야 한다.
잠의 문 앞에서 멈추지 않기
외로운밤을 보낸 뒤 가장 흔한 실수는 잠들기 직전에 스스로를 깨우는 것이다. 갑자기 떠오른 일거리를 해결하려고 노트북을 다시 켜거나, 방금 본 글에 댓글을 달거나, 내일의 불확실성을 오늘 확정하려고 애쓴다. 잠의 문은 생각보다 얇다. 한번 지나치면 다시 돌아오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문 앞에서 멈추지 않으려고 몇 가지 장치를 둔다. 침대 옆에 조도를 아주 낮춘 작은 조명을 두고, 잠들기 직전에는 불을 끄지 않는다. 완전한 어둠은 때로 불안을 키우지만, 아주 낮은 빛은 안전감을 준다. 또, 메모장에 떠오른 일을 적을 때는 동사만 쓴다. 회의안 마무리, 영수증 정리, A에게 답장. 문장을 완성하지 않으면 생각의 사슬이 길어지지 않는다.
아침의 확인, 무리하지 않는 시작
밤에 쓴 다짐은 아침의 빛에서 또 다른 얼굴을 띤다. 피곤이 덜 깔렸을 때, 어젯밤의 결의를 재평가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나는 보통 세 가지를 묻는다. 이것이 여전히 필요할까. 50퍼센트만 해도 의미가 있을까. 방해될 변수가 있다면 무엇일까. 필요가 사라졌다면 미련 없이 지운다. 50퍼센트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면 그만큼만 한다. 방해 변수가 명확하다면 자리를 바꾼다. 점심 직전의 소란을 피하고 오전 10시에 잠깐 시간을 낸다든지, 회사가 아닌 카페에서 서너 줄을 쓴다든지. 이렇게 아침의 빛으로 다짐을 다시 세워두면, 밤의 동력이 허공으로 날아가지 않는다.
언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가
외로운밤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어떤 밤들은 경보에 가깝다. 며칠 쉬면 괜찮아지는 피로가 아니라, 수주에 걸쳐 기능을 떨어뜨리는 신호일 수 있다. 아래 항목은 내가 현장에서 경계 신호로 보는 것들이다. 둘 이상이 2주 이상 이어지면 전문적인 평가를 권한다.
- 잠드는 데 1시간 이상 걸리는 날이 주 4회 이상 반복되거나, 새벽 3시 전후로 깼을 때 다시 잠들지 못하는 일이 잦다. 직장이나 학업에서 평소의 60퍼센트 이하로 성과가 떨어졌다고 스스로 느끼는 기간이 2주 이상 지속된다. 식사량이 반으로 줄거나, 반대로 야간 폭식이 주 3회 이상 발생한다. 자책의 강도가 평소 대비 급격히 커져, 일상적인 실수에도 자기비하가 자동 반사처럼 따라붙는다. 자해나 죽음에 대한 구체적 생각이 반복적으로 떠오른다.
전문가를 찾을 때는 첫 상담의 인상을 너무 절대화하지 않기 바란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는 호흡이 있다. 한두 번의 만남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말고, 세 번 정도의 기회를 주자. 또, 마음 건강은 팀 스포츠에 가깝다. 의사, 상담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직장 상사 중 신뢰할 수 있는 한 사람까지. 팀을 꾸려두면 외로운밤의 무게를 나눌 수 있다.
상실과 기대 사이, 공백을 버티는 방법
외로운밤에는 자주 상실이 떠오른다. 끝난 관계, 지나간 기회, 닫힌 문. 상실은 내일의 다짐을 무력하게 만든다. 다짐의 출발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때는 다짐을 다른 층위로 옮긴다. 성취가 아니라 유지로. 전진이 아니라 머무름으로. 오늘을 버티는 단서들을 모은다. 창틀을 닦고, 이불을 털고, 식물을 돌보고, 코트를 걸어둔다. 정리된 공간은 상실의 얼굴을 자기 자리를 찾도록 돕는다.
나는 애도를 시간으로 재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동작으로 잰다. 한 잔의 차를 우리고, 천천히 마시고, 다 마신 후 컵을 씻어 제자리에 두는 동작. 처음에는 의미가 없게 느껴지겠지만, 반복하다 보면 신체가 배운다. 사라진 것들 사이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동작이 있음을. 외로운밤은 그 동작을 내일로 운반하는 연습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버틸 수 있다.
기대치를 낮추는 일이 의지 박약은 아니다
다짐을 세울 때 가장 조심할 부분은 기대치의 세팅이다. 무리한 기대치는 실패 확률을 키운다. 실패가 쌓이면 자책이 늘고, 자책은 다음 행동을 가로막는다. 그러니 기대치를 현실로 끌어내리는 일은 게으름이 아니라 전략이다. 예를 들어, 러닝을 시작하려 할 때 5킬로미터를 목표로 잡는 대신, 운동화를 신고 문밖으로 나가는 것을 첫 목표로 둔다. 3분만 걸어도 성공으로 기록한다. 이런 기준은 의지를 망가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의지를 보존한다. 에너지의 저장고가 비어 있을 때는 불씨만 지키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기록 없는 변화는 기억 속에서 흐려진다
외로운밤에 세운 다짐은 다음 날 낮의 소란 속에서 잊히기 쉽다. 그래서 단서를 남긴다. 종이 메모, 냉장고 자석, 휴대폰 잠금 화면 문구, 책상 모서리의 작은 점. 단서는 기억을 끌어올리는 고리다. 나는 업무 노트의 오른쪽 위 모서리에 점 하나를 찍는다. 점이 있으면, 전날 밤의 다짐이 하나 있다는 뜻. 점을 보면 그 다짐이 무엇인지 떠올린다. 떠오르지 않으면 노트를 뒤적여 찾는다. 이런 물리적 표식은 디지털 알림보다 부드럽고,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지속가능하다.
외로운밤을 통과한 사람들의 언어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문장 중 마음에 남은 것들이 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도 잠이 오지 않던 간호사는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새벽에는 병동 바닥이 반짝여요. 내가 닦은 건 아니어도, 반짝임이 안심이 돼요. 시험을 망치고 자책하던 학생은 이렇게 정리했다. 다음 과목의 범위가 너무 커서, 진도를 반으로 나눴어요. 절반을 지키면, 나머지는 다음날에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자를 떠나보낸 보호자는 오래 침묵하다 이렇게 덧붙였다. 오늘은 수건만 말렸어요. 내일은 베개 커버를 빨아보려고요. 이들은 외로운밤을 이겨낸 것이 아니라, 외로운밤과 거래하는 법을 배웠다. 거래의 조건은 늘 같지 않다. 그러나 원칙은 있다.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오늘의 시간 안에서.
외로운밤이라는 키워드의 의미
일기장과 온라인 커뮤니티, 위로의 문구들 속에서 외로운밤이라는 말은 자주 반복된다. 때로는 낭만의 틀에 끼워지고, 때로는 자기 연민의 도돌이표처럼 쓰인다. 나는 이 단어를 기능적으로 쓰고 싶다. 외로운밤은 체력과 환경, 관계와 업무, 상실과 기대가 만나는 교차점이다. 이 교차점에서 서성거릴수록 길이 엉킨다. 지도는 밤에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표지판 하나면 충분하다. 오늘 내가 붙잡을 표지판 한 개. 그 표지판이 있으면 내일 아침, 지도 위에서 내 위치를 다시 찾을 수 있다.
오늘 밤, 가능한 약속 하나
이 글을 읽는 지금이 밤이라면, 그리고 마음이 빈 방처럼 느껴진다면, 가능한 약속을 하나만 정하자. 아주 작아도 된다. 컵에 물을 외로운밤 따르고, 손으로 얼굴을 덮고 호흡을 다섯 번 해보자. 내일 아침 열어볼 메모를 한 줄만 남겨두자. 구체적 동사로 시작하고, 10단어 이내로, 측정 가능하게. 예를 들어, 오전 10시, 메일함 정리 15분. 그 정도면 충분하다. 외로운밤은 수행의 시간이 아니다. 통과의 시간이다. 통과하려면 손잡이가 필요하다. 작은 약속은 그 손잡이가 된다.

내일의 빛이 약속하는 것
내일의 빛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대신 비율을 바꿔준다. 밤에 전부였던 것이, 낮에는 일부가 된다. 외로운밤에 짠 다짐은 이 비율 변화를 활용한다. 밤의 다짐이 낮의 행동으로 옮겨지는 순간, 비로소 어제와 오늘이 연결된다. 연결된 날들은 쌓인다. 쌓이는 동안에도 밤은 다시 온다. 그게 삶이다. 중요한 건 밤의 유무가 아니라, 밤을 지나는 기술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전히 어떤 밤에는 휘청인다. 그럴 때마다 몸을 반쯤 굽혀 물을 마시고, 창밖을 보고, 얼굴을 덮고 숨을 쉰다. 내일로 건네는 다짐 하나를 한 줄로 쓰고, 그 줄에 기대어 등을 똑바로 펴본다. 이 반복이 거창한 변화를 약속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반복이 없을 때의 나보다, 있는 나를 더 좋아할 수 있게 된다. 외로운밤은 밤일 뿐이다. 밤이 새면, 메모 속 동사가 나를 깨운다. 그리고 그 동사를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의 아침이 온다.